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ROOM 1

내 과고생활 추억팔이 본문

대학원

내 과고생활 추억팔이

일실 2024. 5. 2. 19:06


과학고 추억팔이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보통 과학고등학교 재학/졸업 당사자는 과고라고 부르고 외부인들은 과학고라고 하더라. 학부모들은 ~곽이라고까지 줄여 말하던데 굳이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고... 어쨌든 과학고라고 말하는 게 더 접근성이 좋을 것 같긴 함. 

지금이야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다. 고등학교하면 나는 벌써 졸업한 지 오래고 심지어 대학을 거쳐 대학원생이 되어버렸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과 지금은 분명 큰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아닌가.....?

과학고에도 수준 차이가 난다는 것은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내 경우에는 지방 과학고였고, 뭐 대충 중간~중상위쯤 되지 않았나 싶다. 상위권 과고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준은 안 되지만 딱 잘라서 상위권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좀 뭐한 그런 위치였음

요즘은 메디컬 생각하면 일반고(자사고 포함)가 과학고보다 훨씬 낫다고 하는데 사실 그건 나 때도 마찬가지긴 했음 학생들이나 학부모들 사이에서 잘 안 알려졌을 뿐이지. 근데 나는 애초에 메디컬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가고 싶다고 해도 절대 "못"가는 인간이었음... 피 공포증이 심해서, 컨디션 안 좋을 때는 교과서의 "적혈구" 글자만 봐도 속이 메슥거리는데 의학 공부를 어떻게 함.... 못하지.... 메디컬로 못 빠지면서 과학 잘 하는 중삐리? 그럼 과학고 가야지ㅋㅋ

솔직히 나한테 과학고는 거의 그냥 천국이었음. 2년(조기졸업함) 동안 진짜 행복했고, 진짜 행복했다. 이건 과거 미화가 절대 아님. 고등학교 때의 나는 '나중에 내가 나이가 들어서 이 시절을 회상했을 때에는 분명 이때가 행복했었다고 기억할 텐데, 그걸 추억보정이나 과거 미화로 착각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진짜 진지하게 했었음. 그래서 졸업할 때쯤에는 매일같이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정말 행복하고, 미래의 내가 이때를 돌이켜보면서 그때 정말 좋았었지라고 말해도 추억보정 같은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고 살았음.... 진짜진짜임

뭐가 그렇게 행복했냐면 뭐 사실 별 건 없다. 그냥 자습실에 "내 자리"를 주고, 급식 졸라 맛있었고, 매일같이 점심 이후에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친구랑 산책하는 것도 좋았고, 밤 11시 반까지 공부하고 나면 대가리 아픈 것도 뭔가 열심히 한 것 같아서 좋았고, 선생님들 진짜 개똑똑한 게 느껴져서 좋았고, 시설 좋아서(아직 신생 과고였음) 그냥 뭐...... 다..........

진짜 애늙은이 같은 생각인데 내가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공부할 일이 앞으로 내 인생에 없을 거란 확신이 있었음. 뭐랄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거... 그래서 좋았다. 행복했음. 진짜.

감상적인 얘기는 이쯤 하고 좀 현실적인 얘기로 돌아가자면, 솔직히 나는 과학고 안 갔으면 인생 여기까지 못 왔음. 그냥 적당히 낮은 대학에서 적당히 낮은 학점 받고.... 솔직히 그 다음에는 모르겠음. 어디든 취업하지 않았을까? 확실한 건 대학원은 안 갔을 듯

입학부터 말해보겠음. 처음에 나는 과학고? 전혀 생각 없었음. 주변에서 등떠밀어서 입학한 케이스임. 이게 말하자면 좀 길기도 하고 자기자랑이기도 한데 간단히 말하자면 이럼.

- 자유방임주의 울엄마, 초딩이었던 나한테 "너도 학원 하나는 다녀야 할 텐데" 다니고 싶은 학원 있냐고 물음
- 초딩 나, 과학 좋아함. 과학 학원 보내달라고 함.
- 하지만 내가 살던 곳의 학군, 개쓰레기. 시내 전체를 뒤져도 과학 학원 따위 없음. 울엄마, 인근 도시의 과학 학원(집에서 1시간 반 거리) 보내줌.
- 배치고사 봄. 제일 윗 반에 배정됨. 이후 학원 전체 1짱먹음. 이거 어떻게 설명해야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진짜 그랬음.
- 초딩 나, 중딩이 됨. 중등부 제일 윗 반에 배정. 
- 알고 보니 그 반은 과학고 대비반. 중딩 나, 과학고 생각 전혀 없음.
- 이때쯤 집안 형편이 좀 안 좋아짐.
- 아빠,  과학고 안 갈 거면 솔직히 네게 쿠자하는 게 아까우니 학원 때려쳐라 발언. 중1 나, 알겠다 하고 학원 때려침.
- 당시 학원쌤, 매우 황당. "너는 학원비를 무료로 하거나 일부 감면해서라도 다닐 수 있도록 윗선에 말해보겠다" 했으나 (여기서 나는 진짜 감동받았음....) 잘 안 돼서 그대로 학원 때려지게 됨.
- 팽팽 놀다 중3이 된 나를 보며 자유방임주의 울엄마, "너도 이제 고등학생이니 학원 다녀야 하지 않나" 재시전. 
- 중3 나,  동네 수학학원에 등록. 솔직히 나는 수학을 못하는 편인데, 학군이 개쓰레기학군이니 당연히 학원 1짱먹음.
- 학원 원장님, 내게 "과학고"이야기 꺼내기 시작. 나, 관심없다 일관.
- 학원 원장님, 포기하지 않음. 시험삼아 그냥 원서만 내보고, 붙어도 안 가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
- 원서접수 2~3달 점, 중3 나, 설득됨. 원서는 내보기로 결정. 
- 나, 이왕 해볼 거라면 제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 발동. 다시 옆 도시의 과학학원 등록.
- 원서접수 이후 합격.

대충 이럼. 중1때까지의 나는 뭔가 과학 좋아하고 과학 잘하면 "당연히"과학고 지원하고 "당연히" 과학고에 갈 거라는 그 암묵적인 기대가 너무 싫어서.... 절대 나는 과학고에 가지 말아야지! 라는 반발심이 있었는데 뭐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 돌이켜 보면 잘 한 선택이지.

어쨌든 이래저래 해서 과학고에 입학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그냥 중소도시 구석탱이의 여중이었는데, 솔직히 공부를 지지리 안 하는 학교였다. 과고 진학? 선례가 없었음. 그런데 이례적으로 내가 뽑혔고, 더불어 내 친구 한 명도 같이 뽑혔다. 좆도 아닌 학교에서 갑자기 두 명? 오.... 파격적이지..... 뭐 걔야 전교 1등이었으니까 그러려니 해도. 보통 나같이 개쓰레기학군에서 과고 간 애들은.... 1학년 때 좌절을 많이 한다고 한다는데 진짠지는 모르겠다. 일단 우리 둘은 안 했음.

좌절이라고 하면 뭐 보통 그런 거 아니냐? 우물 안에서 전교 1등하던 애가 특목고 갔더니 갑자기 바닥 깔고 수업 이해 못 하고 그럴 때나 좌절을 하지... 걔는 중학교 때 전교 1등 하던 애지만 과학고 와서도 1~2등급 유지하는데 좌절할 게 뭐 있음? 나는 뭐 애초에 중학교 때도 전교 40등 이랬으니 애초에 좌절할 게 없었고, 오히려 과학고 와서 전교 15~20등은 유지했으니 이 정도면 괜찮지 뭐ㅎㅎ 이러고 있었음 둘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알겠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재능충이라고 생각하고, 객관적으로도 그렇지 않나? 싶기는 함. 하지만 과학고에 안 왔으면 그냥 적당히 쓰레기 학군에서 내신 한 3등급 초반대 받았을 거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는 어딜 가든 딱 상위 20% 정도만 찍으면 노력을 멈춰버리는 타입이라서.....

중학교에서도 그랬다. 솔직히 중학교 애들 다 머저리인 거 알 텐데 거기서도 대충 뭐 반에서 5~6등 이랬고 그때도 등급이 나왔나? 잘 모르겠지만 환산하면 한 3등급 되지 않을까 싶네... 물론 과학고에서도 대충 3등급 초반대로 졸업했다. 나는 시험이 어렵듭 쉽든 점수도 비슷비슷하게 나오고, 옆에 잘하는 애들 사이에 갖다 놓든 못하는 애들 사이에 갖다 놓든 상위 15%쯤 하니까 그렇게 됨.

그러니까 나는 과학고를 안 가면 안 되는 사람이었던 거지 뭐....... 여러모로 학원 선생님들한테, 그리고 굳이 쓰지는 않았지만 나를 등떠밀었던 수많은 학교 선생님들한테 감사하다 정말

과고 일과는 대충 이랬다. 우선 기상 시간은 7시. 7시부터 기상송이 나왔다. 다른 학교는 6시도 많던데 우리는 7시였음.. 그러면 모두 다 운동장에 집합해서 아침 운동을 함. 운동이라고 해서 별 건 없고 뒷산을 오르거나 운동장을 뛰거나 교내를 걷거나 하는 건데, 예전에는 태권도를 했댔나 뭘 했댔나 암튼 계속 바뀌는 것 같음. 7시 반에서 8시쯤 조식을 먹고, 9시부터 수업 시작임. 4시까진가 4시반까진가 6교시 정규수업을 듣고(아마 일반고랑 똑같을 듯) 7~8교시는 그때그때 다름. 보통은 자습인데 동아리 할 때도 있고, R&E 실험을 할 때도 있고, 보강 수업을 들을 때도 있고, 입시철에는 면접 대비 스터디를 할 때도 있고.... 8교시가 끝나면 오후 6시, 석식 시간임. 저녁 먹고 7시부터 11시 20분까지 야자(강제). 시험 기간에는 12시까지 연장하는데 연장 자습은 필수가 아니긴 했음. 야자 다 끝나면 기숙사 들어가서 씻고, 12시에 소등.

솔직히 뭐 별 거 없음. 자습 시간에는 보통 수학만 뒤지게 팜. 정석 문제만 풀어도 시간 잘 감... 나는 그냥 책도 많이 읽긴 했던 것 같음. 저녁먹고 남는 시간에 도서관 가서 책 빌려오고, 7시에 자리에 앉으면 졸리니까 딱 7시 30분까지만 자고(이거 진짜 안 고쳐지더라 때려죽여도 30분은 자야 했음) 그 다음에  책 읽거나 정석 풀거나... 학원 숙제 있으면 그거 하고. 제법 좋았음. 자습실 형광등도 밝고 갯수도 여러 개라 손 그림자 안 지는 게 정말 좋았음.

그리고 과학고 다니면서 내가 가장 잘 배웠다 싶은 건 다른 게 아니라 ""필기하는 법""임. 이게 진짜 뭔 말인가 싶을 텐데 나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노트필기라는 개념이 없었음. 필기라는 건... 그냥 드라마나 만화에서 나오는 과장된 표현ㅋㅋ 그런 건 줄 알았고 21세기 현대에 그런 게 존재하는지 몰랐단 말임. 내가 개쓰레기학군을 나왔다는 게 이런 말임. 이해됨? 반에 많아봐야 한 명? 잘하지도 못하면서 쓸데없이 유난떠는 애 한둘이나 노트를 가지고 염병삼병 떤다고 생각했음.... 수업? 수업은 듣는 거잖아. 수업인데 왜 글을 써? 수업 내용은 교과서에 다 있는 거 아냐?<- 정확히 그때의 내 생각

근데 과학고 애들 많이 다니는 학원에 등록하고 첫 날 진심으로 문화충격받았음. 선생님은 교재도 없이 칠팡에다가 뭘 계속 쓰고,, 나만 빼고 내 앞뒤양옆에서 전부 다 공책 하나씩 꺼내들고 그걸 다 받아적고 있는 거임... 나는 볼펜 하나 달랑 들고 있었고 가방에는 A4용지 한 장도 없었음.... 선생님이 나보고 "넌 왜 안 써?"라고 물었을 때 뭔가 심하게 잘못된 걸 느낌..

그날부로 당장 노트 하나 샀고, 펜도 샀고.... 사실 처음에는 필기하는 법을 진짜 하나도 몰라가지고 눈치껏 옆자리 애들 따라했음. 근데 뭐 하다 보니까 늘더라 딱 한학기 지나니까 필기가 내 주된 공부법이 되어버렸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임. 내가 또 그림도 한 그림 하니까 필기하는 재미가 있었음.

암튼 그랬다고.... 행복했다고....

그렇게 어떻게 뭐 조기졸업도 해서 2년만에 온 대학교는.... 최악이었음...... 내 생에 암흑기라고 할 수 있음 나는 대학교 좆박았고 대학원 와서 다시 살아난 케이스임.... 대학 수업 너무 겉핥기고 진도나가기에 급급하고 시럼문제는 족보의존성이 강하며 무엇보다 한 과목을 한 학기에 끝낸다는 게 말이 안 됨. 너무 대충임. 게다가 이건 내가 화공과라 느끼는 점일지도 모르겠는데, 4학년쯤 배우는 반응공학? 다들 이게 화공의 진수고 소위 기름집 가려면 잘 해야 하는 중요한 과목이라고 하던데 나는 이거 진짜 존나 실망스러웠음. 그냥 프로그램에 반응식 넣고 값 넣고 돌리는 걸 왜 배움? 이게... 화공? 게다가 batch reactor니 CSTR이니 하는 것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2020년대에 이런 게 현역으로 쓰일 것 같지 않았음. 1980년대면 모를까...

개노잼이었음. 실험 과목은 또 어떻고? 역시 1980녀대에나 썼을 것 같은 측정방식으로 하는 실험들을 굳이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음. 차라리 애초에 실용성 따위는 버려버리고 이론적 이해를 목적으로 한 실험... 뭐 이중슬릿 관찰하기 이런 거면 차라리 재밌지 무슨 21세기에 표면장력을 ring으로 재고...... 물론 학생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과목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는데, 그냥... 현타가 겁나 왔음. 장학금 안 받고 다녔으면 등록금 생각 존나 났을 거임. 어차피 학비 비싼 게 매한가지라면 과고를 4년 더 다니면 안 될까 싶었음. 진심임.

존나 배운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이 좆만한 학부 지식으로 대체 뭘 할 수 있나 싶었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다들 그렇듯 나 역시 대학원에 왔다. 만족함. 행복하고.

'대학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문 작성 팁  (0) 2022.10.23
EndNote 인용 형식 - 저널 약어  (0) 2022.07.15